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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중세시대에는 작위 제도가 널리 행해졌습니다. 5세기부터 15세기에 걸친 중세에서 이 작위 제도는 사회적 계급 구조를 형성하고,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나타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작위는 개인에게 특정한 지위와 특권, 영토, 권력 등을 부여해 사람들을 규정하고 그들의 영향력을 나타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작위는 상속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종족 제도, 귀족 문화, 기사도 등 다양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개요
작위 계급은 다양한 수준과 제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가장 높은 작위는 국가 또는 지역의 군주, 즉 왕이나 여왕이었습니다. 그 아래에는 공작, 백작, 자작, 남작 등 다양한 작위가 있었습니다. 작위의 수준은 권력과 토지의 크기, 귀족의 지위와 명성에 따라 다르게 결정되었습니다.
귀족은 중세 유럽 사회의 상위 계층을 이루었으며, 작위를 통해 귀족의 지위를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귀족은 토지와 재산을 보유하고, 군사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권한과 특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 요새 또는 대저택에 거주하며, 자신의 영토에서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책임이 있었습니다. 또한 귀족은 왕의 조언자나 지배자로서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귀족은 다양한 등급으로 나뉘었고, 상위 귀족은 왕족이나 고위 귀족이었습니다.
귀족작위계급
1. 국왕/여왕 (King/Queen)
국가의 최고 지도자로서 국가의 통치 권한을 가집니다. 일반적으로 왕관을 착용하고, 왕궁에서 거주하며, 왕위는 흔히 직계 자손에게 상속되었습니다. 국가의 통치력을 행사하고, 국가의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책임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왕족은 토지와 자원, 세금을 통제하며, 통치자로서 병역과 충성의 대가로 가신들에게 땅(영지)을 주었습니다. 다른 작위를 부여하거나 취소할 권한을 가졌으며, 군대를 지휘하고 법을 제정할 수 있었습니다.
2. 왕세자/왕세자비 (Prince/Princess)
국왕이나 여왕의 직계 자식 중에서 상위 등급을 가지며, 왕위 계승 순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왕위 계승을 위한 준비를 하고, 국가 내에서 대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특정 국가에서는 왕세자가 독립적인 통치 권한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3. 공작 (Duke/Duchess)
국왕에 의해 임명되며,공작은 상속 가능한 작위로서 토지와 권력을 관리합니다.
중세유럽에는 제후의 세력이 왕권을 위협할 정도로 강력했기 때문에 공작이 왕자 보다 한 단계 위의 직위로 취급받았습니다. 어원은 Dux로 로마인의 영토를 관리하던 고위 군 지휘관들을 호칭하던 단어였습니다. 게르만 민족 대이동 때, 게르만인들이 이 단어를 그대로 따와 사용했으며 이후 강력한 군사 통제권을 가진 고위 군지휘관이나, 큰 영토를 가진 귀족들을 칭하는 단어로 바뀌었습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공작과 대공작을 구분하기도 했으며, 일반적으로 공작 작위는 왕자나 공주 등 직계왕족 다음의 권력을 가진 신분으로 인정되었습니다.
4. 후작(Marquess)
원래는 변경에 큰 영지를 소유한 변경귀족을 지칭하던 말로, 봉건시대로 오면서 공작과 백작사이의 계급으로 상승되었습니다. 주로 국경지역을 수비하던 왕실관리에서 기원한 경우가 많으며, 근대로 들어오면서 국경의 의미가 퇴색되어감에 따라 위세가 줄기 시작했습니다. 중앙집권화를 시도하는 중에 군주들은 '백작은 한 개 이상의 영지를 소유할 수 없다.'는 금지조항을 만들었는데, 이때 후작은 그 조건에서 제외되어 강력한 권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국경의 군사지휘권 및 통치권을 위임받은 국경사령관은 대략 공작과 맞먹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기도 하였습니다. 다만, 중세유럽에서는 후작이 흔한 작위는 아니었습니다.
4. 백작 (Count/Earl)
초기에 형성된 귀족계급으로 군주의 최측근은 대부분 백작의 칭호를 사용했습니다. 로마시대까지 백작은 최고위 귀족계급이었으나, 봉건시대로 들어서면서 공작이 추가되면서 힘을 가진 백작은 공작으로 추대되고 힘이 약한 백작은 공작의 가신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대개 백작 이상부터 대영주로 취급받았습니다. 국왕과 직접적인 군신관계를 맺는 제후들은 백작, 후작, 공작의 고위귀족이었으며 백작 이상의 대영주들은 독립적인 궁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보통 한 왕국에는 10~20명 정도의 백작이 존재했습니다. 백작은 국왕에 의해 임명되며, 일부 국가에서는 상속 가능한 작위입니다.
5. 자작 (Viscount/Viscountess)
백작과 남작 사이에 위치한 작위로,초기에는 백작의 부관이나 대리인등 백작의 최측근을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추후 백작이 세습화되면서 자작 또한 세습화 되어갔고, 자작의 수가 많아지고, 힘이 강해지자 백작에게 하사 받은 봉토 중 가장 중요성이 큰 영지를 중심으로 자신의 영지를 구성했습니다. 초기에는 단순히 백작의 관리로서의 역할만을 지녔으며, 이 당시에는 자신들을 단지 비세코미테스라 칭하거나 백작의 칭호를 덧붙여 사용했습니다. 백작의 차남 이하의 자식들이 물려받는 것이 보편적이었습니다.
6. 남작 (Baron)
초기에는 군주에게 영지를 하사받은 모든 귀족을 칭하였지만 시간이 흐르며 국가별로 그 계급상 위치가 다르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백작, 자작보다 낮은 계급의 귀족으로 자체적으로 영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기사(Knight) 계급보단 상위 계급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자작이 백작의 대리자라면, 남작은 자작과는 달리 백작과 군신관계를 맺지만 독립적인 영주로서 자신의 영지에서 토지 관리와 경영, 토지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보호 등을 담당했습니다. 남작은 일부 지배자들이 지역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기 위해 사용한 지위 명칭이기도 합니다. 특히 중세 유럽의 왕이나 귀족들은 자신들의 힘과 권력을 확장하기 위해 토지를 소유하고, 이를 남작에게 부여하여 그들을 자신의 지배 아래에 두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주로 군사적인 역할을 맡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군대를 조직하고 토지를 방어하며, 왕이나 높은 계급의 귀족에게 충성을 다하는 데 필요한 군사력을 제공했습니다. 원래는 국왕이 직접 임명하였으나, 국왕의 권한이 약화되면서 각 대영주들이 군신관계를 맺는 소영주로 그 성격이 바뀌었습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상속 가능한 작위였습니다.
7. 나이트 (Knight)
기사는 중세시대의 귀족 계급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기사는 작위를 받을 자격이 있는 소귀족의 일원이며, 전형적으로는 어릴 때부터 전쟁 훈련을 받았습니다. 중무장한 기병대로서의 역할을 하며 신념과 명예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기사는 자신의 기량과 미래의 영광을 위해 군주에게 충성하며, 그들의 장래를 위해 영주나 영지를 부여받기도 했습니다.
8. 교회 지도자
교회 지도자들은 교황, 대주교, 주교 등의 작위를 가졌습니다. 그들은 교회의 정교한 계층 구조에 따라 권한을 가지고 있었으며, 종교적인 사회와 국가적인 사회 사이의 매개자 역할을 했습니다.
중세 이후의 영향력
이 외에도 귀족 작위 체계에는 남작자, 백작자, 자작자, 남작세, 백작세, 자작세 등 다양한 작위 등급이 존재했습니다. 작위 등급은 국가와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으며, 작위 체계는 복잡하고 다양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중세 유럽에서 작위는 사회적인 계급 구조를 안정시키고, 권력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작위는 혼자서만 힘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귀족들 사이의 관계와 귀족들과 왕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귀족계급의 권력과 영향력은 중세 말기에 걸쳐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중앙집권국가의 성장, 부르주아 계급의 대두, 화약전쟁의 출현과 같은 요인들이 세력균형을 바꿨습니다. 군주가 권력을 강화하면서 귀족의 역할은 독립된 통치자가 아니라 궁정이나 고문의 역할로 바뀌었습니다. 작위는 18세기와 19세기에 이르러 현대화 과정과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점차적으로 퇴색되었으며, 현대 유럽 사회에서는 작위의 역할이 크게 감소하였습니다.